[뉴스레터][내일의식탁 현장대담 01] 쌀이 살아야 술이 다르고, 술이 달라야 지역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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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내일의식탁 대표가 만난 사람 |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와 나눈 토종쌀·막걸리·108주모 프로젝트 이야기


대담의 문을 열며

토종쌀을 지킨다는 것은 씨앗을 보관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밥이 되고, 떡이 되고, 술이 되어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때 비로소 품종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2026.08.07(금) 10:30~13:00 ·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전북리 259-2
진행 김원일 · 대담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



들어가며

내일의식탁 김원일 대표가 경기도 여주의 우보농장을 찾았다. 이근이 대표는 오랫동안 토종벼를 수집하고 심고 나누어 왔다. 현재 종자로 보유한 품종은 약 450종, 실제 판매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쌀은 약 180종에 이른다. 그러나 그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품종마다 다른 맛과 쓰임을 찾아 농부와 양조인, 요리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이다.

이번 현장대담에서는 108가지 토종쌀로 108명의 주모가 술을 빚는 ‘108주모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왜 막걸리에서 쌀의 다양성을 다시 보아야 하는지, 토종쌀이 어떻게 지역의 일거리와 발효문화를 되살릴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종쌀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쓰이게 하는 것입니다”

김원일  토종벼를 보존하는 일에서 지금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과제는 무엇인가요?

이근이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농부가 계속 심을 수 있어야 하고, 심은 쌀이 팔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품종마다 맞는 쓰임을 찾아야 해요. 어떤 쌀은 밥에 좋고, 어떤 쌀은 떡이나 술에 더 잘 맞습니다. 그 특성을 확인하고 제대로 소개해야 품종이 살아남습니다. 결국 보존은 이용과 소비로 이어져야 합니다.

김원일  한두 가지 ‘맛있는 쌀’을 널리 알리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군요.

이근이  한 품종만 유명해지면 모두가 그것만 심게 되고,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무너집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 품종이 저마다의 자리를 갖는 구조입니다. 품종별 특징을 연구해서 “이 쌀은 이런 밥에, 이런 떡에, 이런 술에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다양성을 지킨다는 건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맞는 시장을 만드는 일입니다.


108가지 쌀, 108명의 주모

김원일  108주모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이근이  젊은 세대가 토종쌀에 관심을 보이고 실제로 주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진 다양한 쌀을 나누고, 젊은 사람들이 그 쌀로 술을 빚게 하면 어떨까. 지난해에 처음으로 108개 품종으로 108명의 주모를 모았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올해 두 번째 108 주모 프로젝트를 곧 시작합니다.

김원일  참가자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근이  기술이 뛰어난 사람만 뽑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토종쌀과 우리 술을 자기 일로 이어가려는 진정성이 중요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술을 빚을 수도 있고, 식품 일을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술을 계속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면 청년 농업과 지역 식품 분야에 새로운 일거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김원일  모든 참가자가 같은 조건에서 빚나요?

이근이  쌀은 품종별로 다르지만 비교할 수 있도록 누룩 등 기본 조건은 가능한 한 통일하려 합니다. 참가자에게 쌀과 누룩을 제공하고, 완성된 술은 원주 형태로 제출받을 계획입니다. 술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과 기록입니다. 쌀의 특성, 빚는 사람의 손맛, 발효의 변화가 함께 드러나야 합니다.


막걸리는 ‘마구 거른 술’이 아니라 ‘막 거른 원주’

김원일  대표님은 막걸리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근이  막걸리를 값싸게 마구 만든 술처럼 보면 출발부터 잘못됩니다. 저는 막걸리를 술을 빚어 처음 막 걸러낸 원주, 곧 우리 술의 근본으로 봅니다. 여기에서 맑은 술도 나오고 증류주도 나옵니다. 농민들이 물을 타 도수를 낮춰 일하며 마신 농주도 있었지만, 그 바탕에는 원주가 있습니다. 막걸리를 근본의 술로 대하면 쌀과 발효, 숙성에 대한 태도도 달라집니다.

김원일  원주를 오래 보관하고 숙성하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요?

이근이  네. 지난해 만든 술 가운데는 1년이 넘도록 보관한 것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맛이 계속 달라져요.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발효가 보여주는 변화입니다. 108가지 술도 제대로 저장해 변화 과정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온도를 관리할 수 있는 보관 공간과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쌀은 막걸리 맛을 얼마나 바꿀까

김원일  양조 현장에서는 누룩이 가장 중요하고 쌀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근이  지금까지는 대부분 비슷한 개량종 쌀로 술을 빚었으니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토종쌀을 같은 조건에서 빚어보면 쌀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향과 단맛, 질감, 발효 속도와 술의 인상이 달라집니다. 쌀이 없었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지, 쌀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김원일  그 차이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요?

이근이  한 번의 품평으로 끝내지 말고 같은 술을 여러 시점에 맛보고 기록해야 합니다. 양조인 뿐 아니라 요리사, 소믈리에, 소비자가 함께 언어를 만들어야 해요. 어떤 음식과 어울리는지, 어떤 온도와 잔에서 특징이 살아나는지도 봐야 합니다. 그렇게 쌓인 기록이 품종의 새로운 사용설명서가 됩니다.


마을마다 쌀이 달랐고, 술도 달랐다

김원일  토종쌀과 지역 술 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시나요?

이근이  과거에는 마을마다 자기 쌀이 있었고, 그 쌀로 술을 빚었습니다. 물도 다르고 누룩과 미생물 환경도 달랐으니 술이 같을 수가 없었죠. 지역 술의 본질은 표준화된 한 가지 맛이 아니라 서로 다름에 있습니다. 토종쌀을 되살리는 일은 사라진 지역의 맛을 다시 상상하고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김원일  그렇다면 대량생산 막걸리와 다른 길이 필요하겠네요.

이근이  소규모 양조장이 대량생산 제품과 같은 기준으로 경쟁하면 어렵습니다. 차별화된 재료와 지역성, 장인정신으로 가야 합니다. 토종쌀은 그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재료입니다. 다만 농부 혼자, 양조장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농부와 양조인, 요리사, 유통과 소비자가 팀이 되어야 합니다.


보존에서 일자리로: 토종벼 연구소의 꿈

김원일  장기적으로 만들고 싶은 구조는 무엇인가요?

이근이  토종벼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거점이 필요합니다. 전국의 농부들이 지역별로 채종포를 운영하고, 젊은 사람들이 적정한 보수를 받으며 그 일을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품종의 재배 기록과 맛, 가공 적성을 모으고 농가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후원금과 협력 사업도 그런 지속 구조를 만드는 데 쓰여야 합니다.

김원일  도시의 소비자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근이  술을 맛보고 쌀을 사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어떤 품종의 어떤 이야기를 지지하는지 알면 좋겠습니다. 108주모 프로젝트의 참가자와 소비자가 계속 만나고, 함께 맛을 표현하고 음식을 짝지으면 도시 안에도 토종쌀을 지지하는 소비 기반이 생깁니다.


참발효 축제에서 보고 싶은 풍경

김원일  가을 참발효 축제에서 108주모 프로젝트를 선보인다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요?

이근이  108가지 쌀과 108가지 술이 한자리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강한 장면이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쌀이 있었다는 사실부터 놀랄 겁니다. 각 쌀의 이야기와 빚는 과정을 전시하고, 술을 맛보고, 발효식품으로 만든 안주와 연결하면 좋겠습니다. 단순 시음회가 아니라 쌀에서 술, 음식, 사람으로 이어지는 전체 과정을 보여주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대담을 마치며

“품종을 보존하려면 그 품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겨야 합니다.” 이근이 대표의 말은 토종쌀뿐 아니라 전통 발효식품 전체에 해당한다. 내일의식탁이 현장을 찾아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도 좋은 생산물과 사람을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시 만날 이유를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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